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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

남전 2018. 3. 4. 08:05

[더,오래] 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

입력 2018.03.04. 01:03 수정 2018.03.04. 07:28 


요즈음 유행하는 단어 중에 ‘워라밸’이 있다. 일(Work)과 생활(Life)의 밸런스(Balance)를 맞추자는 뜻으로 앞 자를 따왔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일상에서 일만 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 또 하나가 ‘소확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으로 저녁 퇴근 후에 맛있는 안주에 더 맛있는 맥주 한잔이라든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구매한다든가, 하고 싶은 취미를 하란 말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나만의 행복을 챙긴다는 의미가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과시형 쇼핑이나 취미 따위는 필요 없다       

   

- ‘효리네 민박’이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 때문일까. 여행을 가더라도 현지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한다. 제주도에 한 달 살기,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멀리 스페인으로 날아가 순례길을 걸으며 한 달 살기를 해 봤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곳에 가서 정착을 못 하니 한 달만이라도 살며 행복한 삶을 경험해 보겠다는 것이다.


- 어쩌면 귀농·귀촌을 결심한 이도 이러한 워라밸, 소확행, 한 달 살기처럼 나의 행복을 위해서 시작했으리라. 일에 치여 죽을까 봐, 거친 조직 생활에서 나는 뭘까 고민하다가,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다가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귀농·귀촌한 뒤에도 매일 매출을 계산하고 손익을 보고 한숨 쉬며 살 것이라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귀농·귀촌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여가만큼은 쉽지 않다. 여가라는 의미는 일하는 시간 외에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자, 노동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주말을 이용하여 내가 취미 삼아 목공 기술로 의자를 만든다면 여가다. 생계를 위하여 주말에도 목수가 되어 의자를 만든다면 그것은 일이 된다. 농부로서 늘 해야 하는 딸기 수확은 일이지만, 농장을 찾아오는 손님이 딸기를 수확하는 건 농업을 체험하는 레저이자 재미있는 여가가 된다. 일과 여가의 차이는 같은 딸기를 따더라도 나타난다.

귀농한 농부에게는 여가가 쉽지 않다.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는다 하더라도 생계를 위한 일이니 늘 신경을 써야 한다. 내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 농작물이 주말이라고 성장을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가축을 키우는 목축인은 때가 되면 반드시 물과 사료를 주어야 한다. 마실을 가거나 교육을 수강하기도 쉽지 않다. 농부는 그래서 가을 수확이 끝난 겨울에 몰아서 여행을 가거나 휴식한다.

- 김제 금모래 마당 농장을 운영하는 조성천 씨는 지난 1월부터 책 쓰기에 빠져있다. 평소 취미가 SNS여서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쓰면서 사진을 찍는다. 농장의 일과 나의 일상을 찍고 쓴 글을 모아 책을 집필하기로 한 것이다. 혼자 하면 중도에 그만둘까 봐 주변의 여러 농부를 모아서 함께 책을 쓰고 있다. 일이 아니라 여가로서 책을 쓰고 있다.


- 직장에서 은퇴해 귀촌한 이들 중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여가라는 것이 조금 난감하다. 이미 일을 떠났으니 모든 시간이 여가에 해당하는데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양평으로 귀촌한 A 씨는 원 없이 쳐보겠다는 골프를 매일 6개월 치고 나니 정말 원이 없어져서 그만두었다. 전국 일주를 해보겠다고 캠핑카를 구매했지만, 그것도 1년 만에 시들해져서 집 마당에 주차해 놓았다. 차 안에서 자는데, 역시 불편해서 콘도나 펜션을 더 자주 이용한다. 놀던 사람이 잘 논다는 말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놀아 본적이 없으니 놀아도 불편하다.


- 귀촌인에게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전한 순간부터 여가가 시작된다. 그러니 여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먹고 자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생활의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여가다. 이 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조금씩 실천하면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귀촌의 삶의 질이란 여가 만족도와 직결한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귀촌하였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여가 시간을 보면 10년 전보다 같거나 오히려 줄어든 추세다.[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2016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 여가활동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평일 여가는 평균 3.1시간이고 휴일 여가는 5시간이며, 여가에 지불하는 비용은 월평균 13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2014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주 여가활동 1순위는 TV시청으로, 46.4%를 차지했다. [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여가 활동 중에는 TV 시청이 46.4%로 압도적이다. TV 앞에 앉아 있는 게 여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저녁이면 TV를 본단다. 2위는 인터넷 게임이다. 따로 개발한 취미가 없는 사람은 TV와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거다.
여가활동 동반자 1순위는 '혼자서(59.8%)'다. 가족과 함께(29.7%)가 그 뒤를 이었다.[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놀라운 것은 여가를 누구와 즐기느냐는 것인데, 혼자서 즐기는 사람이 59.8%다. 가족(29.7%)과 친구(8.8%), 동호회 회원(1%)과 함께 즐기는 여가는 몹시 적다. 이 부분은 혼자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여행은 자녀가 중2병에 걸리는 순간 끝났다고 봐야 한다. 수험생이 되면 더더욱 그렇다.


- 고령화 시대에 함께 여가를 즐길 사람이 적어지니 혼자서 즐길 훈련을 해야 한다. 더구나 문화와 예술, 레저 인프라가 도시보다 훨씬 적은 농어촌에서는 지역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 탐색작업도 해야 한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모호하므로 꾸준히 즐길 수 있는 나만의 행복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농촌의 노인을 보면 다들 부지런하다. 자세히 보면 무언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만들어 먹고 누군가를 만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부지런하게 돌아다닌다. 자연을 벗 삼는다더니 친구 삼아 잘 즐긴다.

역시 최고로 고려해야 할 것은 행복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주변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키우는 밭작물이며 내가 먹이를 주는 누렁이와 꿀꿀이가 나의 취미이자 여가이자 행복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선택한 귀농·귀촌 생활은, 남들에게는 돈을 들여 일부러 찾는 여가이자 장소다. 그러니 나만의 행복을 짓는 생활을 만들어야 한다. 워라밸이니 소확행이니 한 달 살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귀농·귀촌 생활 자체임을 알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